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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글

사이에 관심이 있습니다. 항상 어딘가를 향하고, 마침내 한곳에 정착해 그 원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제 삶의 대부분이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무대에서 스스로를 ‘사이의 인간’이라고 고백했을 때는 사이라는 상태가 너무 불안하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몇 해 를 지나며, 제가 정하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무는 시간보다 그 사이를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설명하기 위해 꺼냈던 말을 일상에서도 종종 떠올리게 됩니다. 사이를 들여다 보면 사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물건의 틈, 기다리는 시간, 너와 나의 관계. 각각 다른 모습 이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생겨나고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기도 합니다. 약속과 약속 사이 에 시간이 남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합니다. 잠깐 앉아 있어도 휴대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이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제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시간이 조금 아깝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말하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쉬 고 있다고 해도 다음 일을 위해 쉬고 있다고 덧붙이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는 시간에도 앞뒤로 이유를 붙여두고 나면,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 대답하기가 편해집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자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요즘 뭐 해?”라는 말은 대부분 반가워서 건네는 인사일텐데, 저는 종종 그 앞에서 잠깐 머뭇거립니다. 하루하루는 분명히 살았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묶어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때 가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의 이름을 말하면 금방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해보려다가 그만둔 일, 아직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것, 한참 생각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는 날들.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인사가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는 일을 하나 골라 대답합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저도 잠시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름이 있다는 건 편리한 일입니다. 나를 소개할 때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때도요. 다만 그 편리함에 기대다 보면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상태는 자꾸 뒤로 밀립니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곧 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하면 들어갈 곳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쉽게 묻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듣다가도, 자꾸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합니다.

 

9월은 사이의 계절 같습니다. 여름과 가을의 사이, 하루 사이에 여러 계절이 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9월에는 무엇을 입고 나갈지 잠깐 고민하게 됩니다. 아침에 걸친 옷을 낮에는 팔에 걸고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입습니다. 여름이 끝났다고 말하기도, 가을이 왔다고 말하기도 조금 이릅니다. 계절이 어느 쪽인지 정해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일단 나가고, 덥거나 추워지면 그때 조금씩 바꿉니다. 그렇게 그날의 날씨 안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제 삶의 사이에서도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요. 아직은 사이가 편안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이 필요하고, 혼자라는 느낌에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써두고, 다음 글에서 제가 어떤 말을 하게 될지 조금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박수영

© 2023 Art Project 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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